책소개
이 책의 주인공인 화담(花潭) 서경덕[徐敬德, 성종(成宗) 20(1489)~명종(明宗) 1(1546)]은 조선 중기 성리학자다. 그는 개성(開城) 출신으로, 본관은 당성(唐城)이며, 화담은 그의 호다. 그는 이(理)보다 기(氣)를 중시하는 주기론자로 기일원론(氣一元論)을 수립해 주창했다.
전승된 서화담 이야기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편차가 있게 제시된다. 대략 17세기 중반 이전의 이야기에는 그리 심각한 대결이 드러나지 않고, 서화담의 능력과 재주가 뛰어나다는 데 중점을 둔다. 그러나 같은 세기 중반 이후부터는 줄거리가 사회적 문제로 확대되고 강화된다. 이는 당대인들이 현실적 좌절을 서화담을 통해 극복하며 세상과의 대결에서 승리하도록 상징화하는 데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대체로 서화담은 시대적 상황을 회피하거나 될 수 있는 한 숨는 태도를 지향하면서 내면적으로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세상에 우회적으로 저항하며 대처한다.
서화담은 전승에서 초기에는 유학자로 기술되고 있으나, 후기에 올수록 도가적 인물로 묘사된다. 지역적으로 살펴보면 대부분 활동적인 도가적 인물로 제시되는데 일부에서는 절제와 탐구의 유학자로 등장하기도 한다. 이러다 보니 그는 ≪전우치전≫과 대비되어 일반적으로 지배층을 희화화하고 약하고 착한 백성들을 돕는 행동하는 영웅인 전우치와 달리 학구적이고 사유적이며 덕을 닦는 데 열정과 의지를 가진 인물이라고 언급된다.
이 책은 실기나 설화가 수용된 소설을 원문으로 해서 풀어 썼다. 이 소설은 실기와 설화와는 달리 일대기적 구성의 완성도가 높고, 설화의 각 편이 삽화적으로 편집화해 일정 부분 유기적 연관성을 가지고 제시된다. 이에 대해 좀 더 기술하면 소재는 초반에는 유학적인 성향을 띠다가 점차적으로 도가적 요소가 가미되어 제시된다. 여기에는 대립과 갈등이 심각하게 드러나지 않고 전개되는데, 서화담은 사회적 문제를 제기하기는 하지만 그 스스로 세상을 멀리하고 피하면서 가르치고 타이르는 방식으로 기술된다.
이에 따라 전승된 서화담 이야기의 소재나 성격, 인물이나 사건 등을 유형화해서 보통 도술소설, 사회소설, 역사소설, 이인(異人)소설, 일사(逸士)소설이라고 규정한다.
200자평
1926년 광동서국에서 구활자본으로 간행된 <도술이 유명한 서화담>을 현대 우리말로 풀어 쓴 소설이다. 화담 서경덕이 도술을 부리는 도사로 등장해 죽은 사람이 살아나게 도와주고, 자신의 제자를 시켜 호랑이에게 잡아먹힐 처자를 구해 준다. 이 책에서 서화담은 일반적으로 지배층을 희화화하고 약하고 착한 백성들을 돕는 행동하는 영웅인 전우치와 달리 학구적이고 사유적이며 덕을 닦는 데 열정과 의지를 가진 인물로 묘사된다.
지은이
미상
옮긴이
송진한은 전남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교수다. 주요 저서로는 ≪조선조 연의 소설의 세계≫(2003), ≪한국 고소설의 창작방법 연구≫(공저, 2005) 등이 있고, 역서로는 ≪비교 문학≫(2012)이 있다.
차례
지은이의 머리말이 시작되다
태몽과 출생, 그리고 성장 이야기가 제시되다
학업을 닦는 데 스승이 따라가지 못하다
하늘이 멀리 가까이 보이는 이치와 종달새가 위아래로 나는 원리를 터득하다
신분을 갈고닦으며 품성을 기르다
신선을 만나 천서를 얻어 수학하다
결혼하는 날 밤 처녀 귀신의 한을 풀어 주다
도술로 가난 타령을 하는 아내에게 빈곤의 덧없음을 깨우쳐 주다
죽은 최씨 효자를 살려 내다
도술을 함부로 부리는 아우를 도술로 타일러 깨우치다
간신들의 음모를 지혜로 피하다
도술을 자랑하는 조카를 타일러 깨우치다
기녀의 유혹을 뿌리치다
박을 심어 운명을 점쳐 보다
구미호에게 홀린 제자 허운을 구하다
허운으로 하여금 신부를 잡아먹으려는 호랑이를 물리치게 하고 그녀와 결혼하게 하다
아내에게 도술을 보여 주고 천지자연의 도를 깨우쳐 주다
원문
해설
풀어 쓴 이에 대해
책속으로
하루는 선생이 화담 옆에 있는 정자나무 밑에서 더위를 피하는데, 허운이 모시고 앉아 있었다. 마침 어디서 키가 크고 얼굴이 사납게 생긴 스님 하나가 와서 바랑을 벗어 놓고 갓을 숙여 쓰고 두 손을 모아 합장하여 선생께 문안을 드리며,
“소승이 오늘은 갈 곳이 있는데, 선생께 옳은지 그른지 그 결정을 묻고자 왔습니다.”
하니 선생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신다. 그 스님이 선생께 작별을 고하고 간 후에 허운이 의심이 나서 선생께 여쭙기를,
“지금 왔다가 간 스님은 어디서 온 스님이며, 어디로 가는 스님입니까?”
선생은 눈을 들어 허운을 보다가 손을 들어 송악산을 가리키며,
“그 스님은 저 산속에서 내려온 스님인데, 실은 사람이 아니라 수백 년 묵은 호랑이가 사람의 모습으로 바꿔서 다니는 것이니라. 오늘 가겠다고 하는 곳은 해주(海州) 서면(西面) 청산리(靑山里)에 사는 장 부자 기연(基淵)의 집이다. 장기연의 딸이 십팔 세로 이름은 소애(小愛)니라. 그녀는 오늘 밤에 호랑이에게 당하는 해를 만나 죽을 수가 있으므로, 그 중이 산신의 허락을 받아서 그 여자를 잡아먹으러 가는 길에 나의 생각이 어떠한지를 몰라서 알고자 하여 온 것이니라. 그러나 하늘의 마음은 살리기를 좋아하고 죽이기를 싫어하시며 또 사람의 목숨이 중대하니, 사나운 짐승이 죄 없는 사람을 해치려 할 바에는 알고서 도와주지 아니함은 천리와 인정에 어긋나는 것이니라. 내가 그 호랑이에게 쾌히 허락한 일이 없으니, 네가 급히 그곳에 가서 그 호랑이를 마음대로 다루어 그 여자를 살려라. 그 호랑이는 신통술을 가진 호랑이이므로, 창이나 칼로는 마음대로 다루기 어려우니, 하늘과 땅에 도술 그물을 치고 부적을 붙인 후 주문을 읽으면서 네가 그 여자의 곁을 떠나지 아니하여야 구하리라. 여기서 그곳이 이백여 리니 오늘 오후 세 시 전에 도달하여 미비함이 없이 일을 처리하였다가 오는 새벽 한 시만 지나면 무사할 것이니 지체 말고 어서 길을 떠나거라.”
―<허운으로 하여금 신부를 잡아먹으려는 호랑이를 물리치게 하고 그녀와 결혼하게 하다> 중에서